전용서체 연대기 · 5편
기초단체 전용서체 집중기(2021~2023): 영덕·상주·구미의 선택
기초단체 226곳 중 74곳이 전용서체를 가졌고 그중 42곳이 2021~2023년 세 해에 몰렸다. 4,900만원짜리 3종 패키지, 특산물과 명소를 딴 이름, 손글씨 공모전이라는 공식이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 영덕·상주·구미 사례로 따라가고, 완성도와 활용을 둘러싼 비판과 실제 효과를 짚는다.
기초자치단체 226곳 가운데 전용서체를 개발했거나 추진 중인 곳은 74곳이고, 152곳은 아직 없다(폰트룩업 등록부, 2026-10-27). 연도별로 보면 2021년 10곳, 2022년 14곳, 2023년 18곳으로 세 해에만 42곳이 몰려 전체의 절반을 훌쩍 넘는다. 이 시기의 서체는 대개 특산물이나 명소 이름을 딴 2~4종 묶음이었고, 상당수가 나라장터에서 4,900만원 안팎에 낙찰됐으며, 투게더그룹 한 회사가 20곳을 맡았다. 이 글은 숫자로 집중기의 윤곽을 그리고, 영덕군의 9개월 과정과 상주·구미의 이름 짓기를 통해 기초단체가 왜 서체를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평가되는지 살핀다.
숫자로 본 집중기: 왜 2021~2023년이었나
폰트룩업 등록부의 기초단체 개발 연도 분포는 이렇다. 2015년 2곳, 2016년 3곳, 2017년 4곳, 2018년 5곳, 2019년 2곳, 2020년 2곳이던 것이 2021년 10곳으로 뛰고, 2022년 14곳, 2023년 18곳에서 정점을 찍은 뒤 2024년 9곳, 2025년 4곳, 2026년 1곳으로 잦아든다. 2015~2020년 여섯 해를 다 합쳐도 18곳이니, 2023년 한 해가 그 이전 6년과 맞먹는다.
개발사는 한쪽으로 쏠려 있다. 투게더그룹 20곳, 윤디자인그룹 11곳, 다온폰트 6곳, 한그리아·디자인210·헤움디자인 각 3곳이다. 상위 두 회사가 기초단체 서체의 40% 이상을 만들었다. 금액은 나라장터 공개 낙찰 기록으로 일부 확인된다. 상주시 2021년 3월 4,900만원, 영덕군 2022년 6월 4,900만원, 구미시 2024년 3월 4,900만원이 모두 투게더그룹이고, 대구 중구는 2024년 5월 헤움디자인과 7,200만원에 계약했다. 조금 앞선 김해시는 2017년 4월 윤디자인과 4,924만원이었다. 등록부가 집계한 서체 개발 용역 37건의 중앙값은 7,689만원이다. 속초시의 2023년 4월 3억 400만원은 CI·캐릭터·전용서체를 한 용역으로 묶은 금액이라 서체만의 값으로 읽으면 안 된다.
같은 회사가 세 기초단체와 똑같이 4,900만원에 계약한 것은 종수와 공정이 정해진 표준 패키지가 자리 잡았다는 신호로 읽힌다. 이 추정은 등록부의 낙찰 금액에서 끌어낸 것이며, 각 시군의 계약 방식과 과업 범위는 따로 확인하지 못했다.
영덕군은 9개월 동안 무엇을 했나
영덕군 사례는 집중기 서체의 전형적인 공정을 보여준다. 메트로신문(2023년 3월 23일)에 따르면 영덕군은 2022년 7월 투게더그룹에 용역을 맡겨 서체 개발에 착수했고, 2023년 3월 21일 최종보고회를 열어 서체를 처음 선보였다. 나라장터 기록의 낙찰 시점은 2022년 6월, 금액은 4,900만원이다(폰트룩업 등록부). 낙찰에서 최종보고회까지 9개월, 착수에서 보고회까지 8개월이 걸린 셈이다.
결과물은 모티브 서체 3종에 시민 공모작 1종을 더한 네 가지다. 대표 특산품 대게를 모티브로 한 영덕대게체, 떠오르는 해와 푸른 파도, 해파랑공원을 담은 영덕해파랑체, 바닷길을 모티브로 한 영덕블루로드체, 그리고 영덕손글씨공모전 금상작을 서체로 옮긴 영덕바다체다. 기사 본문은 4종을 들지만 사진 설명은 3종으로 적어 종수 표기가 어긋나는데, 공모전 손글씨체를 용역 결과에 포함시키느냐에 따라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군은 저작권 등록 뒤 홈페이지에서 무료 배포하고, 김동희 부군수는 "전 국민이 개발된 서체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공공누리에 탑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목적은 지역 정체성 확립, 군민 자긍심 고취, 효과적인 지역 홍보로 정리됐다.
이 공정은 대체로 세 단계로 반복된다. 손글씨 공모전으로 주민 참여를 만들고, 용역사가 특산물·명소 모티브로 제목용 서체 2~3종을 설계하고, 보고회와 저작권 등록 뒤 공공누리로 푼다. 1세대 광역 서체가 디자인 회사의 콘셉트에서 출발했다면, 집중기 기초단체 서체는 공모전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상주와 구미는 왜 그 이름을 골랐나
상주시는 2021년 2월 16일 시 전용서체를 만들기 위한 '상주사랑 손글씨' 공모전을 알리고 3월 31일까지 작품을 받았다. 거주지와 연령 제한 없이 누구나 1인 2편까지 낼 수 있었고, 금상 100만원·은상 50만원·동상 10만원을 걸었으며, 금상 수상작을 전용서체 개발에 쓰기로 했다(경북매일, 2021년 2월 16일). 눈여겨볼 대목은 시가 밝힌 개발 이유다. 디지털 환경에서 저작권 보호가 강화되고 폰트마다 사용 조건이 복잡해지면서 홍보물을 둘러싼 저작권 분쟁이 늘고 있어, 이에 대응하려고 전용서체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집중기 기초단체 서체의 동기가 도시 브랜드만이 아니라 공무원과 지역 단체가 마음 놓고 쓸 "분쟁 없는 글꼴"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드문 공식 설명이다. 나라장터 낙찰은 2021년 3월, 4,900만원, 투게더그룹이다. 결과물 3종은 모두 2021년 출시로 산돌구름에 올라 있다. 상주해례본체는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에서, 상주곶감체는 특산물 곶감에서, 상주경천섬체는 낙동강의 명소 경천섬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상주경천섬체는 손글씨 계열이고, 상주곶감체 페이지는 포장지 용도의 판매 상품 패키지에도 쓸 수 있다고 따로 적어 두었다. 문화유산 하나, 특산물 하나, 명소 하나라는 조합은 이 시기 기초단체 서체 이름 짓기의 공식에 가깝다.
구미시는 2024년 3월 역시 투게더그룹과 4,900만원에 계약했고, 산돌구름에는 낭만있구미체·구미첨단산업체·구미돋움체 3종이 2024년 제작으로 올라 있다. 낭만있구미체는 디스플레이용으로 한글 2,780자와 라틴 95자를 담았고, 구미첨단산업체와 구미돋움체는 민부리 계열이다. 구미시가 지식재산권을 갖고 개인·기업 모두 무료로 상업적 이용까지 허용하되, 서체 파일 자체의 유료 판매와 왜곡·변형은 금지한다. 이름에서 보이듯 구미는 특산물 대신 산업도시 정체성과 도시 슬로건을 앞세웠다. 집중기 막바지인 2024년에는 "무엇을 모티브로 삼느냐"가 특산물에서 도시가 내세우려는 이미지로 옮겨가는 조짐이 보인다.
어떤 비판이 있었나
가장 오래된 비판은 학계에서 나왔다. 정유경의 2012년 논문(브랜드디자인학연구 10권 4호)은 2000년대 이후 지자체 전용서체에 "완성도의 미흡함과 차별성의 부족"이 나타난다고 지적하고, 형태만이 아니라 활용 전략과 시각적 고유성, 상징성을 갖춰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이 지적은 광역 1세대를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집중기 기초단체 서체에 그대로 적용된다. 74곳 가운데 상위 두 회사가 31곳을 만들었고 같은 금액의 같은 구성이 반복됐으니, 차별성에 대한 물음은 피하기 어렵다.
두 번째는 활용의 문제다. 영덕군이 "문서, 책자, 도시경관 등 실생활에서 쓰일 수 있도록 다양한 홍보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것 자체가, 만든 뒤에 쓰이게 하는 일이 별도의 과제임을 보여준다. 낭만있구미체가 디스플레이용으로 한글 2,780자만 담은 것처럼, 집중기 서체 상당수는 제목용이어서 공문서 본문이나 긴 안내문에는 쓰기 어렵다. 본문용 서체가 없으면 지자체 스스로도 보고서와 누리집에는 기존 서체를 그대로 쓰게 된다. 이 한계가 2024년 이후 서울알림체와 부산단디체 같은 본문용 2세대로 이어지는데, 그 이야기는 6편에서 다룬다.
세 번째는 이 글이 확인하지 못한 영역이다. 개별 기초단체의 내려받기 통계나 실제 적용 실태를 비교한 공개 자료는 찾지 못했다. 그래서 "활용이 저조하다"는 일반론은 이 글에서 단정하지 않는다.
그래도 효과는 있었나
반대 증거도 있다. 트윅(2025년 12월 30일)에 따르면 대구 수성구가 2021년 낸 수성혜정체·수성바탕체·수성돋움체는 2025년 12월 기준 누적 내려받기 37만 건을 넘겼고, 수성혜정체는 구청과 구의회 표지석, 시인 구상의 시비, 음식점 간판에 쓰였으며 넷플릭스 「더 글로리」와 tvN 「정년이」에 등장했다. 같은 기사는 문경감홍사과체가 CJ올리브영의 2025년 블랙프라이데이 행사 패키지 박스에 쓰였고, 속초시가 2023년 시 승격 60주년에 낸 속초바다체 3종이 2025년 10월 말 경주 APEC 정상회의 공식 포스터에 사용됐다고 전했다. 속초시 시민소통과장은 대형 국제행사의 공식 시각물에 지역 서체가 채택된 것이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이 사례들의 공통점은 서체가 지자체 바깥으로 나갔다는 것이다. 민간 기업 패키지, 드라마 미술, 중앙 행사 포스터에 쓰이려면 무료이면서 상업적 이용이 허용되고, 제목용과 본문용을 갖추고, 품질이 디자이너의 선택을 받을 만해야 한다. 집중기 74곳 가운데 그 문턱을 넘은 곳은 아직 일부다. 그러나 42곳이 세 해 동안 같은 공식으로 서체를 만든 덕에, "다음에는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분명해졌다. 본문용, 다국어, 시민 1만 명 단위의 참여가 그 답으로 나온 것이 2024년 이후의 흐름이다.
관련 글: 「광역 전용서체 1세대: 부산체·제주서체·경기천년체(2010~2016)」, 「본문용·다국어로 간 2세대: 부산단디체와 서울알림체(2024~2026)」
자주 묻는 질문
기초단체 전용서체 개발 비용은 얼마나 드나?
나라장터 공개 낙찰 기록으로 확인되는 기초단체 사례는 상주시(2021년)·영덕군(2022년)·구미시(2024년)가 각 4,900만원, 대구 중구(2024년)가 7,200만원, 김해시(2017년)가 4,924만원이다. 폰트룩업 등록부가 집계한 서체 개발 용역 37건의 중앙값은 7,689만원이다. CI나 캐릭터를 함께 묶은 용역은 금액이 크게 뛴다.
영덕군 서체는 몇 종이고 무엇을 모티브로 했나?
영덕대게체(대게), 영덕해파랑체(떠오르는 해와 파도, 해파랑공원), 영덕블루로드체(바닷길)에 손글씨 공모전 금상작을 옮긴 영덕바다체를 더해 4종이다. 2022년 7월 투게더그룹이 착수해 2023년 3월 21일 최종보고회에서 공개했다.
지자체 서체를 상업적으로 써도 되나?
지자체마다 다르다. 구미시 서체는 개인·기업 모두 무료로 상업적 이용이 가능하고 서체 파일의 유료 판매와 변형만 금지한다. 상주시 서체는 상업적 재판매만 제한하며 상주곶감체는 판매 상품 포장지에도 쓸 수 있다고 명시한다. 쓰기 전에 각 지자체 누리집이나 배포 페이지의 조건을 확인해야 한다.
참고 자료
- 「영덕군, 전용서체 개발 용역 최종보고회 개최」, 메트로신문, 2023-03-23. https://www.metroseoul.co.kr/article/20230323500354
-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상주사랑 손글씨 공모 참여하세요"」, 경북매일, 2021-02-16. https://www.kbmaeil.com/article/202102160299584
- 「상주해례본체 / SANGJUHaerye」, 산돌구름. https://www.sandollcloud.com/free-font/17618/SANGJUHaerye
- 「상주곶감체 / SANGJU Gotgam」, 산돌구름. https://www.sandollcloud.com/free-font/17616/SANGJU-Gotgam
- 「상주경천섬체 / SANGJUGyeongcheonIsland」, 산돌구름. https://www.sandollcloud.com/free-font/17615/SANGJUGyeongcheonIsland
- 「낭만있구미체 / Gumi Romance」, 산돌구름. https://www.sandollcloud.com/free-font/21094/Gumi-Romance
- 「구미돋움체 / Gumi Dotum」, 산돌구름. https://www.sandollcloud.com/free-font/21092/Gumi-Dotum
- 「구미첨단산업체 / Gumi Industry」, 산돌구름. https://www.sandollcloud.com/free-font/21093/Gumi-Industry
- 「'영월체' 독일 디자인 시상식서 호평… 지자체 개발 '전용 서체' 전성시대」, 트윅(TWIG24), 2025-12-30. https://www.twig24.com/news/2025/12/30/20251230022003
- 정유경, 「지방자치단체의 한글 전용서체에 대한 조형성 고찰」, 브랜드디자인학연구 10권 4호, 2012-12. https://www.earticle.net/Article/A190008
- 폰트룩업 등록부(2026-10-27), 기초단체 전용서체 연도·개발사 집계 및 나라장터 공개 낙찰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