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서체 연대기 · 11편
폰트 저작권 분쟁에서 공공누리까지: 전용서체가 답이 된 이유
법원은 글자 모양이 아니라 글꼴 파일을 컴퓨터프로그램으로 보호한다. 2000년대 후반부터 학교와 비영리단체에 내용증명이 쏟아졌고, 정부는 안내서와 안심글꼴, 공공누리로 대응했다. 기관이 서체를 직접 소유하는 전용서체가 해법이 된 이유를 짚는다.
한국에서 폰트 저작권 분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법이 글자 모양이 아니라 글꼴 파일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1996년 서체 도안 자체는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 봤지만, 2001년에는 서체 파일이 컴퓨터프로그램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파일을 설치해 쓰는 행위가 분쟁의 핵심이 됐고, 2000년대 후반부터 학교와 비영리단체에 내용증명이 이어졌다. 정부는 2013년 안내서, 2016년 이후 안심글꼴, 공공누리 표시로 대응했고, 기관이 서체를 직접 발주해 소유하는 전용서체가 가장 확실한 해법으로 자리 잡았다.
법원은 왜 글꼴 파일을 프로그램으로 봤나?
서울동부교육지원청 박종민 변호사의 정리에 따르면(한국교육신문, 2024-03-05), 대법원 1996. 8. 23. 선고 94누5632 판결은 문서 작성에 쓰는 서체 자체를 저작권 보호 영역에 넣지 않았다. 응용미술은 독립적인 예술적 가치가 있을 때만 저작물로 보호된다는 논리다. 반면 대법원 2001. 6. 29. 선고 99다23246 판결은 서체를 구현하는 디지털 파일을 컴퓨터프로그램으로 보아 보호 대상으로 삼았다. 글자 모양은 누구나 흉내 낼 수 있지만, 그 모양을 담은 파일은 사거나 허락받은 범위 안에서만 쓸 수 있다는 구조가 이때 굳어졌다.
주간경향(2018-07-02)은 법원이 여러 판례에서 폰트를 단순한 데이터 파일이 아닌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보고 저작권법 등의 보호를 받는다고 판결해 왔다고 정리했다. 폰트 저작권 분쟁은 2000년대 후반부터 이어졌고, 정부는 2013년 「폰트 파일에 대한 저작권 바로 알기」라는 안내서를 내 사례별 유권해석을 제시했다. 그러나 안내서가 나온 뒤 3~4년이 지나자 PDF에 내장된 폰트라는 새 쟁점이 불거졌다.
학교와 비영리단체는 어떤 식으로 당했나?
내용증명의 수신자는 대체로 저작권에 밝지 않은 곳이었다. 서울 시민의 공익활동을 지원하는 서울NPO지원센터는 2018년 5월 한 법무법인으로부터 자료실의 PDF가 폰트 저작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공문을 받았다. 전자책(e-book) 라이선스가 없으면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니 라이선스 보유 여부를 확인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문제의 PDF는 센터가 만든 것이 아니라 서울시 산하 다른 공공기관이 작성한 문서였고, 센터는 공문을 받은 직후 파일을 내렸다(주간경향, 2018-07-02). 같은 기사에서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자신들이 찾아낸 관련 사례만 수천 건이라고 밝혔다.
학교 사례는 더 구체적이다. 한국교육신문(2019-04-25)에 따르면 경북의 한 초등학교는 홈페이지에 올린 소식지와 현수막 때문에 두 폰트 업체에 대한 배상 요구를 받았고, 요구안은 개당 135만 원짜리 1년 사용 패키지 2개를 사거나 업체별 합의금 66만 원씩을 내는 것이었다. 경남의 한 교사는 2015년 근무하던 학교의 학교신문에 쓴 서체 2건 때문에 각각 120만 원, 130만 원가량의 라이선스 구매를 요구받았다. 2024년 정리에서는 인천광역시교육청 사건의 청구액이 400만~500만 원이었지만 법원이 인정한 금액은 약 100만 원이었다는 점도 드러났다(한국교육신문, 2024-03-05). 서체 회사가 패키지 구매를 조건으로 합의를 제안하지만 실제로 쓴 폰트는 그중 일부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 변호사의 지적이다.
PDF 쟁점은 여전히 회색지대다. 폰트 업체는 오프라인 인쇄용과 전자책용 라이선스를 따로 팔며, 전자책용 라이선스 없이 폰트가 내장된 PDF를 온라인에 올리는 것을 침해로 본다. 반면 법조계 일각에서는 공정이용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한국저작권위원회는 PDF를 '이미지로 저장'하면 분쟁을 피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분쟁을 우려한 기관들이 PDF 게재를 꺼리면서 시민의 정보 접근성이 좁아진다는 우려도 나왔다(주간경향, 2018-07-02).
정부는 어떤 글꼴을 '안심'이라 불렀나?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는 2016년 10월 '국민저작물 보물찾기 공유전'에서 훈민정음 서문을 쓴 손글씨를 모집해 폰트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누구나 쓰게 하겠다고 밝혔다. 무료 폰트의 상당수가 개인용으로만 허용돼 학교와 기업이 분쟁을 겪고, 폰트 업체가 초등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낸 일이 배경으로 명시됐다(문화체육관광부, 2016-10-07). 문체부는 2020년 3월 「"이 글꼴 써도 되나?" 이것만큼은 안심하고 쓰세요」라는 제목으로 안심글꼴파일 71종 모음집을 배포했고(문화체육관광부, 2020-03-30), 2021년 3월에는 KCC김훈체·KCC박경리체·KCC안중근체에 이어 KCC임권택체를 OFL로 공유마당에 공개했다(세계일보, 2021-03-09).
교육 쪽은 따로 움직였다. 교육부는 2023년 3월 학교안심글꼴 13서체(24종)를 OFL로 보급했고(디지털인사이트, 2023-04-12), 교육저작권지원센터는 2021년부터 분쟁 위험이 있는 폰트를 찾아 주는 점검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2024년 3월 기준 학교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폰트는 114개 폰트 234종이다(한국교육신문, 2024-03-05).
공공누리 1~4유형은 무엇을 허용하나?
공공누리는 공공저작물에 붙이는 자유이용 허락 표시다. 표시가 붙은 저작물은 개별 허락 없이 조건만 지키면 쓸 수 있고, 네 유형 모두 출처 표시는 필수다(문화체육관광부 공공누리 안내).
- 제1유형(출처표시): 상업적·비상업적 이용과 변형이 모두 가능하다.
- 제2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하고 변형은 허용된다.
- 제3유형(출처표시·변경금지): 상업적·비상업적 이용은 가능하지만 변형은 금지된다.
-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하고 변형도 금지된다.
근거는 저작권법 제24조의2(공공저작물의 자유이용), 제37조(출처의 명시), 제9조(업무상 저작물)다. 출판물은 표지나 본문에, 영상은 엔딩 크레딧이나 자막에, 제품은 포장에 출처를 적는 식으로 표시 위치도 안내돼 있다. 서체에 공공누리가 붙으면 이용자는 유형 이름만 보고 변형과 상업 이용 가능 여부를 가릴 수 있다.
OFL은 성격이 다르다. 2005년 1.0, 2007년 2월 1.1이 나온 뒤 본문이 바뀌지 않았고, 자유로운 수정과 재배포를 허용하되 지정된 글꼴 이름(Reserved Font Name)을 보호한다(SIL Open Font License 누리집). 공공누리가 '출처를 밝히고 쓰라'는 틀이라면 OFL은 '고쳐서 나눠도 되지만 이름은 바꾸라'는 틀이다.
전용서체는 왜 해법이 됐나?
내용증명이 쌓일수록 기관의 선택지는 좁아졌다. 상용 폰트를 사면 라이선스 범위를 일일이 따져야 하고, 무료 폰트는 개인용 한정인 경우가 많았다. 남은 길은 기관이 서체를 발주해 저작권을 갖고 조건을 스스로 정하는 것이었다. 영주시는 2023년 8월 영주풍기인삼체를 시 홈페이지와 공공누리 사이트에서 무료로 배포하면서 상업적 이용은 허용하고 글꼴 판매와 모양 변형만 금지했다(메트로신문, 2023-08-08). 영덕군은 2023년 3월 최종보고회에서 서체를 저작권 등록한 뒤 홈페이지로 무료 배포하고 공공누리에 탑재하겠다고 밝혔다(메트로신문, 2023-03-23). 국립공원공단의 KNPS오대산체는 출처만 표시하면 변경과 영리 이용이 가능한 공공누리 조건으로 배포된다(산돌구름 KNPS오대산체 페이지).
다만 전용서체라고 조건이 모두 느슨한 것은 아니다. 영덕군이 손글씨 공모전 금상작으로 만든 영덕 바다체는 상업적 이용은 가능하지만 회사명·브랜드명·로고 등 BI/CI 용도는 금지되고 임베딩은 조건부다(산돌구름 영덕 바다체 페이지). 부산시가 2026년 10월 배포한 부산단디체 보도자료에는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이 표기돼 있다(부산광역시, 2026-10-11). 같은 '무료 전용서체'라도 유형 이름 하나로 허용 범위가 갈리므로, 기관이 조건을 명확히 적고 이용자가 그 조건을 읽는 것이 분쟁을 끝내는 마지막 단계다.
관련 글: 「공공기관 전용서체: 학교 안심폰트·공군 서체·국립공원 서체」, 「지자체 전용서체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발주부터 배포까지」
자주 묻는 질문
글자 모양을 따라 그리면 저작권 침해인가?
대법원 1996. 8. 23. 선고 94누5632 판결은 문서 작성용 서체 자체를 저작권 보호 영역에 넣지 않았다(한국교육신문, 2024-03-05). 분쟁의 대상은 글자 모양이 아니라 그 모양을 담은 글꼴 파일이며, 대법원 2001. 6. 29. 선고 99다23246 판결이 이를 컴퓨터프로그램으로 봤다. 따라서 파일을 설치·복제하는 행위가 핵심이다.
외부 업체가 만든 홈페이지의 폰트도 기관 책임인가?
서울특별시교육청 사건(서울서부지방법원 2019. 10. 18. 선고 2019나32013)에서 법원은 외부 업체가 폰트 파일을 설치해 만든 결과물에 대해 교육청의 손을 들어줬다(한국교육신문, 2024-03-05). 반면 학교 직원이 학교 컴퓨터로 만든 문서는 학교에 파일이 설치돼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판단이 인천 사건에서 나왔다. 누가 파일을 설치해 썼는지가 갈림길이다.
공공누리 제1유형 서체는 로고에 써도 되나?
제1유형은 출처를 표시하면 상업적 이용과 변형이 모두 가능하다(문화체육관광부 공공누리 안내). 다만 공공기관이 후원하거나 특수한 관계에 있는 것처럼 오인하게 하는 표시는 금지되며, 기관에 따라 BI/CI 용도를 따로 제한하기도 하므로 배포 페이지의 조건을 함께 확인해야 한다.
참고 자료
- 「PDF 문서 '폰트 소송' 당해봤니?」, 주간경향, 2018-07-02. https://weekly.khan.co.kr/article/201807021506321
- 「[교단법률] 폰트는 왜 마음대로 쓰면 안되나요?」, 한국교육신문, 2024-03-05. https://hangyo.com/mobile/article.html?no=101059
- 「'저작권 침해 소송' 골머리 앓는 교단」, 한국교육신문, 2019-04-25. https://www.hangyo.com/mobile/article.html?no=88426
- 「국민 손글씨로 만든 글꼴, 누구나 자유롭게 쓴다」, 문화체육관광부, 2016-10-07. https://www.mcst.go.kr/site/s_notice/press/pressView.jsp?pSeq=15621
- 「"이 글꼴 써도 되나?" 이것만큼은 안심하고 쓰세요」, 문화체육관광부, 2020-03-30. https://www.mcst.go.kr/site/s_notice/press/pressView.jsp?pSeq=17904
- 「임권택 감독 손글씨체 'KCC임권택체' 무료 공개」, 세계일보, 2021-03-09. https://www.segye.com/newsView/20210309504214
- 「"저작권 걱정 없이 안심하고 수업하세요!"」, 디지털인사이트, 2023-04-12. https://ditoday.com/?p=71020
- 「공공누리(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 문화체육관광부. https://www.mcst.go.kr/kor/s_policy/subPolicy/contents/contents04.jsp?pSeq=20
- 「OFL」, SIL Open Font License. https://openfontlicense.org/
- 「영주시, 전용서체 '영주풍기인삼체' 무료 배포」, 메트로신문, 2023-08-08. https://www.metroseoul.co.kr/article/20230808500078
- 「영덕군, 전용서체 개발 용역 최종보고회」, 메트로신문, 2023-03-23. https://www.metroseoul.co.kr/article/20230323500354
- 「KNPS오대산체」, 산돌구름, 2025. https://www.sandollcloud.com/free-font/22705/KnpsOdaesan
- 「영덕 바다체」, 산돌구름, 2023. https://www.sandollcloud.com/font/18448/Yeongdeok-Sea
- 「부산시, 도시브랜드 전용서체 '부산단디체' 무료 배포」, 부산광역시, 2026-10-11. https://www.busan.go.kr/nbtnewsBU/17586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