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서체 연대기 · 3편

무료 배포가 만든 생태계: 나눔글꼴과 배달의민족 한나체

네이버는 2008년 한글날 약 5억 원을 들인 나눔고딕·나눔명조를 무료로 풀고 2010년 OFL로 바꿨습니다. 배달의민족은 2012년 간판 글씨를 닮은 한나체를 시작으로 매년 한글날 즈음 새 글꼴을 내놓았습니다. 무료 배포가 브랜드와 한글 글꼴 생태계에 남긴 것을 정리했습니다.

한국에서 '무료 한글 폰트'가 당연한 것이 된 출발점은 두 기업의 한글날입니다. 네이버는 2008년 한글날 '한글 한글 아름답게' 캠페인의 하나로 나눔고딕과 나눔명조를 무료로 풀었고, 2010년에는 모든 나눔글꼴을 수정·재배포까지 허용하는 OFL(Open Font License)로 바꿨습니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2012년 길거리 간판 글씨에서 따온 한나체를 시작으로 매년 한글날 즈음 새 글꼴을 무료로 내놓았습니다. 두 회사의 무료 배포는 글꼴 저작권 분쟁을 피할 안전한 선택지를 만들었고, 글꼴 자체가 브랜드의 목소리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줬습니다.

네이버 나눔글꼴은 왜 한글날에 나왔나?

2008년 10월 9일 네이버(당시 NHN)는 한글날을 맞아 한글 글꼴 2종 '나눔고딕'과 '나눔명조'를 만들어 누구나 받을 수 있게 했습니다. 한글 사랑 캠페인 '한글 한글 아름답게'의 일환이었고, 같은 날 한글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동영상을 13개 언어로 만들어 해외 동영상 사이트에 올리고 첫 화면의 NAVER 로고도 한글 손글씨로 바꿨습니다. 글꼴 개발에는 약 5억 원과 12개월이 들었으며, LCD 화면에서도 선명하도록 클리어타입 힌팅 기술을 적용했습니다. 네이버는 향후 2~4년간 글꼴을 추가로 만들어 순차 배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네이버 보도자료, 2008-10-09)

기업 전용서체라기보다 '캠페인 글꼴'로 출발한 셈입니다. 조수용 당시 NHN CMD 본부장은 이런 시도가 이용자에게 한글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네이버 보도자료, 2008-10-09) 약속은 지켜졌습니다. 2009년에는 나눔글꼴 2.0으로 개선하고 개발 환경에 맞춘 '나눔고딕 코딩체'를 국내 최초로 추가 배포했으며, 손글씨 공모전에 들어온 3만 3천 작품 가운데 대상작을 글꼴로 개발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네이버 보도자료, 2010-06-16) 2016년 2월에는 모바일 화면에 맞춘 제목용 '나눔스퀘어'가 나왔고, 이때 네이버가 정리한 나눔글꼴 목록에는 나눔고딕·나눔명조·나눔손글씨·나눔고딕에코·나눔바른고딕·나눔바른펜·나눔옛한글·나눔코딩·나눔스퀘어 9종이 올라 있습니다. (네이버 보도자료, 2016-02-04) 2024년 11월 '나눔휴먼'이 나올 때 디자인컴퍼스는 이 캠페인이 15년째 이어지고 있고 파생 글꼴을 합치면 나눔글꼴이 15개가 됐다고 전했습니다. (디자인컴퍼스, 2024-11-05)

OFL 전환은 무엇을 바꿨나?

처음부터 자유로운 라이선스는 아니었습니다. 2010년 6월 네이버는 모든 나눔글꼴을 "수정 및 재배포까지 가능토록" OFL로 바꿨다고 발표했습니다. 개인과 기업 모두 무료로 쓸 수 있되, 글꼴 자체를 유료로 판매하는 것만 금지됩니다. 네이버는 우분투 리눅스 한글 버전에 나눔글꼴이 기본 글꼴로 실렸고 상용 소프트웨어와 모바일 기기에서도 활용이 늘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네이버 보도자료, 2010-06-16)

실제 글꼴 파일에 딸린 라이선스 문서를 보면 조건이 분명합니다. 나눔명조는 SIL Open Font License 1.1을 따르고, 저작권 표기는 "Copyright © 2010 NHN Corporation", 디자인은 "Font designed by FONTRIX"로 적혀 있습니다. 예약 글꼴 이름(Reserved Font Name)으로 Nanum, Naver Nanum, NanumGothic, NanumMyeongjo, NanumBrush, NanumPen 등 10개가 지정돼 있어, 파생 글꼴을 만들 수는 있어도 이 이름들을 쓸 수는 없습니다. (Fontsource, Nanum Myeongjo 라이선스 정보)

OFL은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 웹 서비스에 글꼴을 묶어 넣을 수 있게 한 열쇠였습니다. '무료로 쓸 수 있다'와 '수정해 다시 나눠 줄 수 있다'는 전혀 다른 말이고, 나눔글꼴이 리눅스 배포판과 각종 프로그램에 실린 것은 후자 덕분입니다.

배달의민족 한나체는 어떻게 태어났나?

우아한형제들의 첫 글꼴 한나체는 2012년 10월 9일 제작됐습니다. 1960~70년대 간판을 모티브로, 아크릴판 위에 시트지를 칼로 잘라 붙인 느낌을 살렸습니다. 당시 인턴이던 디자이너 태주희가 참여했고, 처음에는 배달의민족 브랜딩을 위해 가볍게 만든 글꼴이었습니다. (디지털인사이트, 2017-08-10) 모티브가 된 간판의 연대는 매체에 따라 갈려, 한경 매거진은 1970~80년대 아크릴 간판으로 적습니다. (한경 매거진, 2017-02-15) 이름은 김봉진 대표의 첫째 딸 이름에서 왔고, 2014년의 주아체는 둘째 딸 이름입니다. (벤처스퀘어, 2016-10-07)

한명수 CCO는 길거리 간판에서 모티브를 얻어 울퉁불퉁하고 세련되지 않은 글꼴을 만들었고 그것이 배민의 아이덴티티가 됐다고 설명합니다. 프로젝트는 김봉진 의장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고, 김 의장은 지금도 길거리 간판 사진을 모은다고 합니다. 한 CCO는 글꼴을 회사의 목소리를 일관되게 전하는 수단으로 봤습니다. (뉴데일리경제, 2022-12-09) 세련됨이 아니라 투박함을 브랜드로 삼았다는 점에서, 한나체는 앞선 기업 서체들과 결이 달랐습니다.

한나체 이후 매년 어떤 글꼴이 나왔나?

우아한형제들은 산돌커뮤니케이션과 함께 글꼴을 만들어 왔습니다. 한나체 뒤 완성도를 높이려는 요구가 생겨 협업이 이어졌고, 5년간 다섯 개의 폰트를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디지털인사이트, 2017-08-10) 배민은 2012년 한나체를 시작으로 매년 한글날 즈음 제작한 글꼴을 누구나 무료로 쓰게 배포해 왔습니다. 연도별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뉴데일리경제, 2022-12-09)

  • 2012년 한나체: 길거리 간판의 투박한 글씨에서 착안
  • 2014년 주아체: 붓으로 그린 손글씨 간판이 모티브
  • 2015년 한나는열한살체, 도현체: 도현체는 이태원 부동산 간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기획부터 완성까지 약 1년
  • 2016년 연성체: '제주도 호박엿 가판대' 문구에서 영감, 또박또박 쓴 붓글씨 느낌
  • 2017년 기랑해랑체
  • 2018년 한나체 Air, 한나체 Pro
  • 2019년 을지로체: 을지로 일대 손글씨 간판 장인의 글씨가 모티프, 2,350자, 제작 약 1년
  • 2020년 을지로10년후체, 2021년 을지로오래오래체
  • 2022년 글림체: 글자와 그림을 합친 이름, 150자

주아체와 도현체의 세부는 디지털인사이트(2017-08-10), 연성체는 벤처스퀘어(2016-10-07), 을지로체는 뉴데일리경제(2019-10-07)에서 확인했습니다. 도현체와 연성체의 이름은 직원 제비뽑기로 구성원 자녀의 이름을 골라 지었습니다. (벤처스퀘어, 2016-10-07) 2019년 을지로체부터는 '도시와 글자'라는 장기 프로젝트를 내걸고 사라져 가는 옛 도시 문화를 디자인 유산으로 남기겠다고 밝혔습니다. (뉴데일리경제, 2019-10-07)

배민 글꼴의 이용 조건은 나눔글꼴과 비슷하게 넓습니다. 글꼴의 지식재산권은 우아한형제들이 보유하되, 자유롭게 수정·변경해 개인과 기업이 영리·비영리 목적으로 쓸 수 있고, 글꼴 파일(otf/ttf) 자체를 유상으로 판매하는 것만 금지됩니다. 간판, 출판물, 웹페이지, 영상 자막, 로고, 제품 포장에 쓸 수 있다고 안내합니다. (산돌구름, 배민 한나는열한살체 안내)

무료 배포는 브랜드와 생태계에 무엇을 남겼나?

브랜드 쪽의 효과는 분명합니다. 배민 글꼴은 사업 성과에 직접 기여하지는 않지만 간판과 메뉴판, TV 자막에 널리 쓰이며 문화적 영향력을 얻었고, 제주의 소상공인이 을지로체로 간판을 만든 사례도 있습니다. (뉴데일리경제, 2022-12-09) 2019년 을지로체 전시는 사진이 잘 나오는 공간으로 SNS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뉴데일리경제, 2019-10-07) 글꼴을 공짜로 나눠 주면 그 글꼴이 쓰인 모든 자리가 브랜드의 광고판이 됩니다. 2015년 메트로신문이 기업들의 한글 서체 무료 배포를 두고 한글 문화 발전에 기여하면서 기업 이미지를 드러내는 마케팅 수단이기도 하다고 쓴 것은 이 구조를 가리킵니다. (메트로신문, 2015-10-11) 한경 매거진은 2003년 현대카드 유앤아이 이후 기업 서체가 브랜드 정체성이 된 흐름의 예로 네이버 나눔서체, 배달의민족 한나체, 아모레퍼시픽 아리따체를 들었습니다. (한경 매거진, 2024-08-28)

생태계 쪽의 효과는 더 큽니다. 네이버가 2008년에 밝힌 대로 글꼴 하나에 약 5억 원과 1년이 드는데, 이 비용을 기업이 대신 치르고 결과물을 OFL로 내놓자 개인과 소규모 사업자는 저작권 걱정 없이 쓸 수 있는 본문용 한글 글꼴을 얻었습니다. 나눔글꼴이 우분투에 실린 것처럼 소프트웨어에 묶어 넣을 수 있는 한글 글꼴이 생긴 것도 이때입니다. 배민 글꼴은 한글 2,350자 안팎의 제목용 글꼴을 매년 하나씩 보태며, 간판과 자막처럼 '튀어야 하는' 자리에 쓸 무료 선택지를 넓혔습니다. 글꼴 제작에는 산돌과 폰트릭스 같은 전문 회사가 참여했으니, 기업의 예산이 글꼴 디자인 회사의 일감이 되고 그 결과가 공공재로 돌아오는 순환이 만들어진 셈입니다.

물론 무료라고 해서 만드는 비용이 적은 것은 아닙니다. 배민이 글림체를 만들 때 산돌과 협의하며 일반 글꼴 하나에 자음·모음 약 2,500개, 풀패키지는 11,000자가 필요하다고 설명한 데서 보듯 글꼴 하나를 제대로 만드는 비용은 여전히 큽니다. (뉴데일리경제, 2022-12-09) 그래도 2008년과 2012년의 두 한글날이 없었다면, 오늘 한국의 화면과 간판은 훨씬 더 단조로웠을 것입니다.

관련 글: 「기업 전용서체의 시작: 현대카드 유앤아이와 아모레퍼시픽 아리따(2003~2006)」, 「서울서체 2008: 서울한강체·서울남산체는 어떻게 도시의 글자가 됐나」

자주 묻는 질문

나눔글꼴은 상업적으로 써도 되나요?

네이버는 2010년 모든 나눔글꼴을 OFL로 바꿔 개인과 기업 모두 무료로 쓸 수 있게 했습니다. 수정과 재배포도 가능하지만 글꼴 자체를 유료로 판매하는 것은 금지되며, 파생 글꼴에는 Nanum·NanumGothic 같은 예약 글꼴 이름을 쓸 수 없습니다.

배달의민족 글꼴은 로고나 간판에 써도 되나요?

배민 글꼴은 자유롭게 수정·변경해 개인과 기업이 영리·비영리 목적으로 쓸 수 있고, 간판·출판물·웹페이지·영상 자막·로고·제품 포장에 쓸 수 있다고 안내합니다. 다만 글꼴 파일(otf/ttf) 자체를 유상으로 판매하는 것은 금지돼 있으며, 조건은 바뀔 수 있으니 우아한형제들의 최신 안내를 확인해야 합니다.

배달의민족 한나체는 왜 그런 이름이고 어떤 글씨에서 왔나요?

한나체는 김봉진 대표의 첫째 딸 이름에서 왔고, 1960~70년대(매체에 따라 1970~80년대) 길거리 간판의 투박한 글씨를 모티브로 아크릴판 위에 시트지를 칼로 잘라 붙인 느낌을 살렸습니다. 2012년 10월 9일 제작됐으며 처음에는 배달의민족 브랜딩을 위해 가볍게 만든 글꼴이었습니다.

전용서체 개발 문의 전용서체란 무엇인가 지자체 전용서체 현황

참고 자료

  1. 「네이버에서 한글 글꼴 무료로 받아가세요!」, 네이버 보도자료, 2008-10-09. https://navercorp.com/media/pressReleasesDetail?seq=26822
  2. 「활짝 열린 네이버 나눔글꼴, 마음껏 활용하세요.」, 네이버 보도자료, 2010-06-16. https://navercorp.com/media/pressReleasesDetail?seq=27958
  3. 「네이버, 한글의 아름다움 그대로 살린 새 글꼴, '나눔스퀘어' 제공」, 네이버 보도자료, 2016-02-04. https://navercorp.com/media/pressReleasesDetail?seq=29276
  4. 「나눔 휴먼: 네이버의 새로운 글꼴」, 디자인컴퍼스, 2024-11-05. https://designcompass.org/2024/11/05/nanumhuman/
  5. Nanum Myeongjo 라이선스 정보(OFL 1.1, 예약 글꼴 이름), Fontsource. https://fontsource.org/fonts/nanum-myeongjo/about
  6. 「05. 우리가 어떤 '폰트'입니까」(한나체·주아체·도현체 제작 비화), 디지털인사이트(디아이투데이), 2017-08-10. https://ditoday.com/?p=429
  7. 배달의민족 네 번째 무료 서체 '연성체' 출시 보도(한나·주아·도현 연도, 이름 유래, 산돌 협업), 벤처스퀘어, 2016-10-07. https://www.venturesquare.net/735384/
  8. 「한글날 맞이 8번째 서체 전시 2030 네티즌 '입소문'」, 뉴데일리경제, 2019-10-07. https://biz.newdaily.co.kr/site/data/html/2019/10/07/2019100700076.html
  9. 「배민, 2012년부터 한글날 기념해 제작한 자체 글꼴 무료 배포」, 뉴데일리경제, 2022-12-09. https://biz.newdaily.co.kr/site/data/html/2022/12/09/2022120900008.html
  10. 배민 한나는열한살체 안내(이용 조건), 산돌구름. https://www.sandollcloud.com/free-font/211/BM-HANNA-11yrs-old
  11. 현대카드 유앤아이 등 기업 한글 서체 무료 배포 보도, 메트로신문, 2015-10-11. https://www.metroseoul.co.kr/article/2015101100015
  12. 「현대카드 디자인의 저력, 전용 서체 '유앤아이' 20년사 담은 아카이빙북 펴내」, 한경 매거진, 2024-08-28.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408281727b
  13. 「글자만 봐도 '아~그 회사', 서체 개발 열풍」, 한경 매거진, 2017-02-15.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1702148179b